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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섬이 좋은 사람들]① 여수 365섬의 기록자…박근세 사진작가

"나는 아직 그 섬에 닿지 못했다"

양진형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11:13]

[인터뷰-섬이 좋은 사람들]① 여수 365섬의 기록자…박근세 사진작가

"나는 아직 그 섬에 닿지 못했다"

양진형 기자 | 입력 : 2024/06/08 [11:13]

여수시 소호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근세 작가


2022년 7월, 여수세계섬박람회 준비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국동에 위치한 여수시 ‘섬 발전과’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사무실 벽면에 ‘여수 섬 365개’를 모두 담은 큼직한 액자가 보였다. 누구 작품이냐 물었더니, 담당자는 박근세 작가라고 답했다. 순간, 그가 진정한 여수 섬의 기록자임을 알게 됐다.

 

한국섬뉴스는 각자의 위치에서 섬 발전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조명하기 위해 [인터뷰-섬이 좋은 사람들] 코너를 마련했다. 그 첫 손님으로, 박근세 작가를 만났다.

 

- 카메라를 메고 여수 365개의 섬을 모두 탐방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부터 여수의 섬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요?

 

“1970년대 말 전투경찰로 해안초소에 근무하면서 섬과 인연을 맺었다. 첫 근무지는 신안군 임자도였는데 그곳에서 6개월 정도 근무하고, 고흥 나로도 등지에서 근무했다. 달빛이 해수면에 금빛 윤슬로 반짝이고, 쉼 없이 밀려드는 파도가 섬 해안에 스러질 때 듣던, 당시 인기 있던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가 초병의 마음을 편안하게 위무해 주었다.

 

2020년 서울 종로구 팽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개최된 '박근세 초대전' 포스터


제대 후 여수 GS칼텍스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됐는데 군 시절, 섬에서의 그런 편안함이 그리웠다. 그래서 낚시를 취미 삼아 여수의 이 섬, 저 섬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엔 낚시 잡지에서 원고청탁이 들어올 만큼 낚시에 빠져 지냈다.”

 

- 섬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게 된 계기는…

 

“여수 거문도 옆에는 아름다운 백도가 있다. 1979년 국가명승으로 지정되고 그 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도 지정되었는데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그곳 출입이 가능했다. 섬을 사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인 1981년도에, 낚시동호회에서 백도를 간다고 해서 따라나섰다.

 

백도 항공사진/사진=박근세 작가


그런데 백도에 도착한 낚싯배가 엔진에 이상이 있다며 상백도에 일부 승객을 남겨 놓은 채 거문도를 거쳐 여수로 회항하는 일이 있었다. 상백도에 남은 6명에 대해서는 다음 날 아침, 다른 배가 와서 실어 간다고 하기에 그 말을 믿고,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밤에 태풍이 불어오는 바람에 4일간 꼼짝없이 상백도에 갇히게 되었다.

 

마침, 36판짜리 필름 7통을 가지고 갔었는데 안갯속 백도의 다양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던 나흘째 되는 날,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는데 한마디로 ‘비경’ 그 자체였다. ‘백도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구나’ 속으로 생각하면서 가져갔던 필름을 모두 사용했다. 그때부터 여수 섬 사진에 대해 천착하게 된 것 같다.”

 

- 그래도 여수 365개 섬을 카메라에 모두 담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

 

“백도에 다녀온 후, 여수의 섬들을 하나둘씩 카메라에 담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365개 섬을 모두 담아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2014년도에 여수시에서 ‘여수 365 생일 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인이 함께 해보라며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다. 그때 세어보니, 365개 섬 중 미답지는 4곳에 불과했다. 그래서 2016년까지 미답지 섬들과 낚시 위주로 찍었던 섬들은 다시 방문해 사진작가의 시각으로 섬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았다.”

 

여수 365개 섬들의 모습이 담긴 액자/사진=박근세 작가


- 46개의 유인도는 여객선이나 도선을 타고 가면 되지만 나머지 무인도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은 없었나요?

 

“여수의 섬들을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배를 3번이나 소유해 본 적이 있다. 처음엔 해군 특전병(UDT) 상륙작전에 쓰이는 고무보트(10마력)를 샀는데 사용이 불편하고 관리가 어려웠다. 공기를 넣는데 1시간 여가 걸렸고, 또 바닷물에 고무가 닿으면 민물로 씻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어 고무가 녹아버렸다.

 

두 번째 배는 소형 어선인데 돌산 신기항의 지인에게 보관을 맡겼다. 그런데 어느 날 바람이 심하게 불어 배가 침선 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후 바다로 나가면 배가 표류를 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다.

 

세 번째 마련한 배를 타고 일행들과 금오도 일몰 촬영을 가고 있다/사진=박근세 작가

 

세 번째 배 또한 어선인데 이번에는 금오도 지인에게 맡겼다. 배는 바닥에 낀 이물질을 1년에 두 번 정도 청소를 해줘야 한다. 그걸 하지 않으려면 크레인으로 배를 육지에 올려놓아야 하는데 관리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따져보니, 배를 사놓고도 사용한 횟수는 1년에 3~4회에 정도에 불과했다. 마침, 배를 사겠다는 후배가 있어서 미련 없이 팔아버렸다. 그 후로도 사진 찍는 비용은 모두 개인적으로 충당했다.”

 

- 섬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로망이 배를 갖는 것인데 관리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주변에 배를 사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는 중이다. 배를 사고 나서 기분이 좋을 때는 ‘배를 살 때와 타고 나갔을 때, 그리고 팔 때’ 딱 세 번뿐이다. 그 외에는 모든 게 걱정이다. 지금도 누가 배를 준다고 하는데 바람만 불어도 걱정해야 하니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 그동안 여수의 섬들을 주제로 사진전도 개최했을 것 같은데요.

 

“2016년 1월 직장을 퇴직하면서 초대전으로 ‘365 사진전’을 열었고, 그 후 2020년에 ‘섬·사람이 그립습니다’, ‘2022년 백도전(展)’을 개최했다. 올해는 화가들과 함께 여수 섬을 홍보하기 위해 지난 5월에 거문도· 백도를 다녀왔고 9월부터 여수, 광주, 서울에서 순회 전시회를 가질 예정이다. 

 

'백도의 비경' 사진전 포스터

 

- 전시 중에 팔린 작품도 있었을 듯한데요.

 

“물론 있지만, 사진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안면으로 사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웃음). 사실 섬 사진작가는 경쟁력이 약하다. 소멸되어 가는 섬의 현장을 누군가는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그 일을 해왔을 뿐이다. 지금 섬의 인구는 60~70년대 인구의 1/10에 불과하다. 섬 소멸시대에 마지막 기록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섬 사진에 충실할 생각이다.”

 

- 박 작가님께 있어 좋은 사진이란?

 

“오래 두고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사진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김정희의 세한도를 좋아하는데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문인화로서의 의미가 있고,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진도 스토리를 담고 있어야 질리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나는 아직 내세울 만한 대표작이 없다. 그 섬에 가는 중이지만, 아직 그 섬에 닿지는 못한 것 같다.”

 

- 국내에서 좋아하는 사진작가가 있다면….

 

“동아일보와 한국일보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던 전민조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 ‘섬-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1971~1973)’이란 사진집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하나같이 훌륭한 작품이다.

 

최근에는 제주일보 사진기자인 서재철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게 됐다. 작년에 여수 연도를 가면서 만났는데 ‘그 섬에 내가 있었네’로 유명한 고(故) 김영갑 작가처럼, 제주도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는 작가이다.

 

(사진 위) 거문도 동도 죽촌 해녀인 김정대 할머니(2024. 82세). (사진 아래) 거문도 고도 해녀들의 입수 준비/사진=박근세 작가


앞으로 계획은 이분들처럼 건사한 사진 작품집으로 마지막 해녀 모습을 담아 ‘여수 해녀 사진집’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아시다시피 여수의 안도, 연도, 거문도, 초도에도 해녀들이 계신다.”

 

- 여수의 섬들을 기록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면요?

 

“횡간도 사람들이다. 2015년 횡간도가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에 응모하기 위해 사진 봉사를 요청받아 간 적이 있다. 마을 구석구석을 촬영하였고 작업복 차림의 동네 어르신들이 약주를 권해서 한잔했던 기억이 있는데 오랜만에 갔더니 낯선 건물이 생겼다.

 

2015년 횡간도에서 뵌 어르신들/사진=박근세 작가


‘하늘카페’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갔더니 작은 그림 작품들이 걸려 있었고, 목사님이 마을 사람들을 위해 운영하신다는 걸 알게 됐다. 섬 주민들을 위해 직접 커피도 내려 주시고, 여수까지 나가서 제빵 기술도 배워와서 고급 재료로 빵도 구웠다. 처음엔 선교목적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순수하게 마을 주민들을 섬기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사진 위) 2019년 횡간도 '하늘카페' 빵 굽는 날. (사진 아래) 섬 아주머니의 행복한 모습/사진=박 작가


그다음에 갔을 때는 목사님이 교인들과 함께 주민에게 나눠 줄 빵을 만들고 있었다. 평상시 섬 문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평생을 멸치를 잡고, 삶아서 말리고, 포장하여 상품으로 내느라 남루한 옷을 입고 지내던 분들이었다. 그런데 머리에는 호텔 셰프들이 쓰는 흰 모자에 하얀 가운을 입고 빵을 굽게 되니 그렇게도 좋았나 보다. 섬 아낙네들의 싱그러운 웃음이 함박꽃처럼 피어났다.

 

섬을 다니면서 섬사람들이 그토록 행복해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때의 광경은 감동으로 다가왔고 뇌리에 깊게 새겨졌다. 한 사람이 노력이 섬의 문화를 이렇게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목사님을 존경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친분을 유지해 오고 있다.

 

- 그동안의 섬사람들의 삶과 풍광을 담으면서 많은 사람과의 인연을 구축했을 것 같은데 네트워크는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요?

 

“페이스북에 ‘아름다운 여수 365섬’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개설한 지는 8년 정도 되었고, 현재 회원들은 2600여 명에 달한다. 애초 사이트를 개설한 목적은 우선, 섬사람들과 소통하여 섬의 특산물을 육지 사람들과 연결해 주는 가교가 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섬 특산물 광고도 허용했는데 고령이신 분들이 많아 사이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이 있다.

 

사이트 개설의 또 하나의 목적은 섬 주민들과의 소통인데 이 부분은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각 섬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데 회원 상호 간에 도움을 주고 있다.

 

섬으로 가는 길/사진=박근세 작가


현재 해외 11개국에 살고 계시는 교포들과도 포스팅을 통해 자주 소통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에 계신 분들이 고향 소식을 접하려고 많이 들어오신다. 그래서 섬 전반에 관한 이슈도 좋지만 가능한 ‘여수 365섬’ 중심으로 운영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섬과 바다'가 아닌, 다른 글을 쓰는 회원들은 삭제하는 게 원칙이어서 최근에도 50여 명을 정리했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내년 초 책을 발간할 계획이다. (가칭) ‘여수의 재밌는 섬 이야기’이다. 섬에 다니면서 안 찍은 사진이 없다. 자연경관에서부터 식물, 해안, 어패류 등 모든 것을 담았다. 금오도의 경우는 지금까지 셀 수 없을 만큼 갔는데 그동안 여수의 유·무인도를 돌면서 채록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여수 섬들의 속살들을 풀어놓고 싶다. 물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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