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순례자의 섬' 한국의 산티아고...신안 기점·소악도

양진형 기자 | 기사입력 2020/12/28 [22:18]

'순례자의 섬' 한국의 산티아고...신안 기점·소악도

양진형 기자 | 입력 : 2020/12/28 [22:18]

흔히 섬들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신안군. 그런 신안군에서도 홍도나 흑산도, 가거도 등은 뭍사람들에게 관광명소나 특산품으로 일찍이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의 섬들은 꼬막처럼 엎디어 보잘것없는 섬들로 치부되었다.

 

증도면 동남쪽의 바다 위에 고만고만하게 어깨 깃을 맞대고 열도 모양으로 도열해 있는 병풍도와 그 새끼 섬인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또한 마찬가지였다. 병풍도를 포함하여 총 60세대에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생산해 내는 주요 농수산물 또한 마늘, 고추, 고구마에 낙지, 감태, 망둥어로 여느 섬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여느 섬에 없는 다른 한 가지가 있었다. 갯벌에 물이 빠지면 무릎까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섬과 섬 사이를 오갈 수가 있었다. 사람들은 좀 더 수월하게 건너기 위해 돌무더기를 갯벌 속에 박기 시작했다. 이쪽 섬과 저쪽 섬을 연결하는 노둣길의 시작이었다. 돌이 잠기면 다시 넣고, 다시 잠기면 또 넣었다. 마침내 섬과 섬 사이를 이은 징검다리 같은 길이 완성되었다.

 

# 보잘것없는 섬에서 ‘국내 최고 순례의 섬’으로

 

대기점도 선착장에 '베드로의 집'이 보인다

 

병풍도에서부터 소악도까지 4개의 섬을 이렇게 연결한 노둣길만 14km 이르러 국내 최장이다. 사람들은 노둣길로 이어지는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등 네 개의 섬을 ‘기점·소악도’라 부른다.

 

이 노두를 통해 섬 사림들끼리 결혼을 하고, 부고장을 돌리고, 하나님의 말씀도 전파되었다. 현재 병풍도 주민의 80%가 개신교 신자임이 이를 증명한다. 거기엔 문준경 전도사가 있다.

 

문 전도사는 신안 암태도 출신으로 1927년부터 인근 다도해의 섬들을 돌면서 전도를 시작했다. 보따리를 이고 노둣길로 작은 섬을 건너 다니던 한 여 전도사의 헌신적인 노력은 병풍도 주민들의 신앙의 싹이 되었다. 한 해 고무신이 아홉 켤레나 닳을 정도로 선교에 앞장서 신안에만 100여 곳의 교회를 개척하다가 6·25 전쟁 중에 증도에서 순교했다. 병풍도에 떨어진 밀알은 가시덤불이 아니었다. 질펀한 갯벌에서 칠면초처럼 더디지만 튼실하게 자라났다.

 

마침, 전남도는 2015년부터 섬 주민이 살고 싶고 여행자가 가고 싶은 섬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슬로 라이프, 가고 싶은 섬’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었다. 그동안 강진 가우도, 여수 낭도, 고흥 연홍도, 완도 생일도 등이 가고 싶은 섬을 통해 명품 섬으로 거듭났다.

  

 12사도 순례길 지도


이번엔 기점·소악도였다. 2017년 전남도가 5년에 걸쳐 40억 원을 지원하는 아홉 번째 공모사업에 당선된 것이다.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을 잇는 12㎞의 길에 예수의 12사도를 상징하는 예배당을 짓는 아이디어였다. 모티브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져왔다. 누가 봐도 ‘보잘것없이 보였던 섬’들이 내재적 역량을 알아본 이들의 아이디어로 단박에 ‘보석의 섬’으로 변신했다.

 

하루 두 번 드러나는 갯벌, 노둣길, 기저에 흐르는 주민들의 신앙, 여기에 동화책에나 나옴직한 이색적인 건물들이 어우러져 대한민국 최고의 순례길로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스토리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올해 2월 완공 예정이었던 순례길에 지난해 9월부터 순례객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소악선착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올해 코로나 19의 여파 속에서도 수많은 인파들이 왔다가 갔다.”며, “주민 소득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 12사도 순례길의 출발지 대기점도 ‘베드로의 집’

 

 가운데 있는 종을 치고 순례를 시작한다

 

기점 소악도에 있는 12사도 순례길의 출발지는 대기점도 방파제 맨 앞에 서 있는 ‘베드로의 집’이다. 송공항에서 대기점항에 접근하는 순간 회색의 개펄 위에 드러난 하얀 건축물이 시야에 확 들어오며 경건함을 자아낸다. 단지 규모가 작을 뿐 그 모양새가 그리스 산토리니섬에 있는 건축물과 흡사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썰물 때는 배가 선착장에 접항을 못하기 때문에 개 고랑(수로)까지 방파제가 약 300m 정도 돌출되어 있다. 그런 탓에 아직 사람들의 손때가 묻지 않은 자연의 생태가 숨을 쉬는 섬처럼 느껴진다. 방파제 끝에 어떻게 이런 건축물을 지을 생각을 했는지. ‘베드로의 집’을 보는 순간부터 다음 2사도의 집이 궁금해진다. ‘베드로의 집’ 내부를 둘러보고, 가운데 있는 작은 총을 친 후 순례를 시작한다.

  

 2사도 '안드레아의 집' 내부에서 바라본 병풍도(가운데)와 노둣길(좌)

 

2사도 ‘안드레아의 집’은 우측으로 병풍도를 바라보며 지척의 갯벌과 어깨를 마주하며 이정표를 900m를 따라가다 보면 나온다. 그 중간에 자전거대여점도 있어 원하는 사람은 대여가 가능하다. 2사도 집은 이슬람 양식이다. 작가는 섬 주민들의 무사 기원을 담아 건축했다고 한다. ‘안드레아의 집’ 내부에 난 작은 들창을 통해 바라보니 병풍도가 보이고, 대기점도를 연결하는 노둣길이 길게 펼쳐져 있다.

  

3사도 '야고보의 집'


3사도 ‘야고보의 집’은 이곳에서 600m 가면 된다. 문을 열고 내부를 보니, 외벽으로 난 5개의 작은 창에서 ‘그리움의 집’이라는 부제에 어울리는 분홍빛이 은은히 번져 나온다. ‘야고보의 집’은 그리스식 양쪽 기둥이 지붕을 떠받쳐주어 안정감을 준다.

  

 4사도 '요한의 집'


4사도 ‘요한의 집’은 정면은 바다를 향하고 있지만 문을 열고 내부를 보니, 가운데 기둥처럼 세로로 난 창 너머로 잘 관리된 무덤이 보인다. 섬에서 금슬 좋기로 소문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가 무덤 주변을 잘 가꿔왔다고 한다.

  

 5사도 '필립의 집'


5사도 ‘필립의 집’까지는 이곳에서 600m. 소기점으로 넘어가는 노둣길 초입에 있는 ‘필립의 집’은 프랑스 남부의 전형적인 건축형태다. 적벽돌과 갯돌, 적삼목을 덧댄 유려한 지붕 곡선과 물고기 모형이 특징이다.

 

열두 개 예배당을 만드는 데는 한국 작가 6명과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외국 작가 5명이 참여했다. 외국 작가 중 가장 눈길을 끈 인물은 프랑스 공공조각 설치예술가인 장 미셸 후비오(65)인데 이 예배당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이 이외에 6사도 ‘바르톨로메오의 집’과 9사도 ‘작은 야고보의 집’을 건축했다.

 

# 종교에 상관없이 ‘자신을 성찰하기에 좋은 길’

  

 6사도 '바르톨로메오의 집'


6사도 ‘바르톨로메오의 집’까지는 노두 건너 400m의 거리로, 소기점도 호수 위에 그림처럼 떠 있다. 햇볕의 변화에 따라 모자이크 형태의 유리가 뿜어내는 빛이 신비롭다. 12사도 중 유일하게 사람이 접근할 수 없다.

  

 7사도 '토마스의 집' 유리창 문


7사도 ‘토마스의 집’은 이곳에서 700m 거리인데 가는 도중에 작가들이 머물며 사용했던 컨테이너 작업실을 볼 수 있다. '토마스의 집은' 게스트하우스 뒤편에 있는데 사각형의 흰색 건축물에 짙은 바다색으로 띠를 둘렀다. 인연의 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집은 별들이 내려와 박힌 듯 푸른색 문이 인상적인데 창문 윗부분은 거울모형으로 얼굴을 반사 시킨다.

  

 8사도 '마태오의 집'


8사도 ‘마태오의 집’까지는 이곳에서 300m. ‘마태오의 집’은 노둣길 중간 갯벌 위에 러시아 정교회같이 조성돼 있다. 황금색 양파형 지붕 세 개가 솟아 있다. 만조 시에는 마치 바다 한 가운데 등대처럼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1사도 베드로의 집과 함께 이번 프로젝트를 주관한 김윤환 작가의 작품이다.

  

 9사도 '작은 야고보의 집'


9사도 ‘작은 야고보의 집’까지는 1.2km로 조금 멀다. 소악도선창가 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신도가 9명인 소악교회가 예쁜 모습으로 순례객들을 맞이한다. 그곳에서 조금 더 직진하면 우측에 ‘작은 야고의 집’이 있다. 바다를 향해 물고기 모형으로 처리한 스탠드 글라스가 눈길을 끈다. 내부에는 방석 하나와 적갈색 판목이 우뚝 서 있는데 방석 위에 저절로 무릎을 뚫고 기도를 하고 싶을 만큼 경건함을 준다.

  

 10사도 '유다 타대오의 집'


10사도 ‘유다 타대오의 집’은 소악도 노둣길을 건너면 바로 나온다. 뾰족 지붕의 부드러운 곡선과 작고 푸른 창문이 여럿 있는 건축물이 특징적이다. 내부를 열어보니 카펫 위의 송판과 촛대가 잘 어울린다.

  

 11사도 '시몬의 집'


11사도 ‘시몬의 집’까지는 600m. 건물에 문이 없는 게 특징이다. 외벽도 트여 있어 다도해와 김양 식장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마지막 12사도 ‘가롯 유다의 집’. 이 집은 기점·소악도에 딸린 딴섬에 있어 만조 전후로 3시간 동안 건널 수 없다. 물 때가 맞으면 솔밭 사이로 난 모래밭 길이나 11사도 집에서 이어진 해안가로 접근할 수 있다. 썰물 때는 바위에 붙은 파래와 바다, 그리고 건너편 섬들이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기점ㆍ소악도에서 떨어진 진섬에 있는 '가롯 유다의 집'


건물은 붉은 벽돌로 길게 건축되어 있으며 뾰족한 지붕은 지금껏 보았던 건물 중 가장 높은 느낌을 준다.

12사도의 집을 모두 순례하고 소악선착장으로 향하는데 신안군에서 내건 플래카드가 눈길을 끈다.

 

"불편한 섬! 불편함을 즐기는 순례자의 섬”

 

1) 위 치

o 전남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

 

2) 순례길 트레킹 코스 : 12km (3~4시간)

- 기점·소악도(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

- 주의사항 :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www.khoa.go.kr)에서 반드시 물때를 확인해야 함.

* 만조 시간을 중심으로 앞뒤 1시간 30분, 총 3시간 노두길 건널 수 없는 구간 있음.

 

3) 가는 방법

o 출 발 : 압해도 송공항 06:50/09:30/12:50/15:30

나오는 배편 : 각 1시간 10분 후

- 문의 : 해진해운(061-279-4222)

* 하절기, 동절기에 따라 운항시간이 변동될 수 있으니 여객선사에 반드시 확인바람.

 

o 출 발 : 증도 버지항에서 하루 1회/ 지도 송도 선착장에서 하루 4회 → 병풍도행 배편

- 문의 : 정우해운(061-247-2331)

* 병풍도에서 대기점도는 노두길로 연결되어 이동은 가능하나 3km 정도 더 걸어야 함.

 

o 문 의 : 신안군청 ‘가고싶은 섬 TF팀(061-240-8687)

 마을식당 식사, 민박 예약(061-246-1245)

 마을버스(15인승) 061-240-8621

 

4) 12사도 길 즐기기

 o 도보 순례, 자전거 라이딩

 o 하루를 잡는다면, 병풍도항에 내려 병풍바위 조망 후 대기점도 노두 이동 방법 추천.

 

5) 추천사이트 : 여객선 예약예매 사이트 : https://island.haewoon.co.kr/

                                           신안군 문화관광 : https://tour.shinan.go.kr/home/tour/island_tour/page.wscms

                                           대한민국 구석구석 : https://me2.do/FTkjMHPY

 

  • 도배방지 이미지

경기도 인천 충청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제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