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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해경 아카이브/사라지는 항·포구](4)해남우수영·삼지원
진도대교 개통 후 삼지원 항구 여객선 사라져

진도 벽파항 연결하는 육지의 관문..서해해경 검문소 설치 안전 제고 주력

양진형 기자 | 기사입력 2021/11/02 [10:15]

[서해해경 아카이브/사라지는 항·포구](4)해남우수영·삼지원
진도대교 개통 후 삼지원 항구 여객선 사라져

진도 벽파항 연결하는 육지의 관문..서해해경 검문소 설치 안전 제고 주력

양진형 기자 | 입력 : 2021/11/02 [10:15]

진도대교와 해상케이블카/사진=서해해경청


전남 해남군과 진도군 사이의 좁은 바다를 명랑해협이라 하는데 이곳 사람들은 ‘울돌목’이라 불렀다. 물살이 소용돌이치고 그 흐름 소리가 마치 물이 우는 듯했기 때문이다. 1597년 이순신 장군은 이 해협의 거센 물살을 이용해 12척의 병선으로 무려 130여척의 왜적 함선을 물리쳤다. 이른바 명량해전이다.

 

이 울돌목에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와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를 연결하는 길이 484m의 진도대교가 2005년 말 완공됨에 따라 진도는 육지와 연결됐다.  

 

명량대첩비/사진=서해해경청


다리가 놓이기 전 진도로 들어가는 출입객 대부분은 진도대교의 동남쪽에 위치한 해남군 황산면 삼지원 항구에서 철부선을 이용했다. 진도대교 아래가 진도와 해남을 연결하는 최단거리지만 이곳 명량해협은 폭 290여m, 수심 20여m에 지나지 않는 데다 남서해 쪽과 남동해 쪽의 바닷물이 거세게 드나들어 배가 다니기에 적합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현재 진도대교의 아래쪽 해남 우수영(명랑)과 진도 녹진항에는 90여년 전 나룻배가 종종 운항됐을 뿐 두 지역을 연결하는 배는 그 이후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우수영 토박이인 정애 할머니(86·문내면 선두리)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명랑과 녹진 간에 나룻배가 다녔다. 울돌목의 물살이 워낙 거세서 물때를 봐가며 아주 조심스레 배가 다녔다”고 전했다.

 

우수영항/사진=서해해경청


현재 우수영 항에는 제주를 오가는 쾌속선이 하루 1회 왕복 운항할 뿐 다른 항로는 개설돼 있지 않다.

 

한때 진도의 관문 역할을 했던 황산면 삼지원항은 다리 개통 후에는 한적한 어민 선착장으로 바뀌었고 항구 주변의 인가도 모두 사라졌다.

 

진도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삼지원항 부근에서 살았다는 윤영삼 씨(75·황산면 옥동리 옥연마을)는 “예전에 항구 바로 근처에 둥근 형태의 작은 산이 하나 있었고 그 산 밑에서 3~4가구가 살았는데 여객선도 끊기고 이 산을 허물어 바다를 매립했다”고 말했다.

 

삼지원항/사진=서해해경청


윤 씨는 이곳에 나고 자란 데다 자신이 직접 승선표까지 팔았기에 이곳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안다며 60년대 이전에는 노를 젓는 배가 다녔고, 박정희 정권 시작 무렵에는 ‘통통배’가 다녔으며 70년대 후반에 들어서 철부선이 운항됐다고 회고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6시 막배까지 삼지원과 진도 벽파 간 여객선이 1시간 간격으로 운항됐다. 배 손님을 싣기 위해 버스가 하루에 20번 정도 왔다 갔다 했고 금호고속의 전신인 광주여객은 버스를 철부선에 싣고 진도로 건너갔다.”

 

이어 윤 씨는 “삼지원이 울돌목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물살이 쌔서 밀물 때는 항구 앞에서 왼쪽으로, 썰물 때는 오른쪽으로 배들이 흘러가듯 가다가 해협을 어렵게 건넜다”며 “삼지원은 70~80년대가 전성기였고 이곳에서 버스를 타면 광주까지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했기에 무려 5~6시간이 소요됐다”고 말했다. 

 

우수영 여객선터미널 내 여객선검문소/사진=서해해경청


서해해경청은 우수영 여객터미널에 여객선검문소를 설치해 필요시 해양경찰관을 파견하고 순찰 및 계도활동 등을 통해 해안지역 주민과 여행객의 안전 제고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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