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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구 박사의-맛있는 인천 섬 이야기] ⑦ 울도 새우 파시

글/사진 김용구 인천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센터장 | 기사입력 2023/10/26 [09:21]

[김용구 박사의-맛있는 인천 섬 이야기] ⑦ 울도 새우 파시

글/사진 김용구 인천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센터장 | 입력 : 2023/10/26 [09:21]

울도 정상에서 본 덕적군도 다도해/사진=김용구 박사


19세기 쌀이 주식화되면서 새우젓은 식욕을 촉진시키는 부식으로 비중이 커졌다. 김치의 발달은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김치에 새우젓이 쓰이고 수요가 늘면서 민중의 일상식으로 정착시키는 문화적 배경이 되었다(안정윤, 19세기 서해안지역의 새우젓 생산이 식생활에 미친 영향, 중앙대대학원, 2002.).

 

새우 종류는 전 세계적으로 약 2900종이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는 약 90종이 있다. 우리나라 연해에는대하·중하·꽃새우·중국점새우·돗대기새우·자중새우 등 온대성 새우류가 많다.

 

옛 문헌에 따르면 새우류는 한자로는 보통 하(鰕)가 쓰였고 하(蝦)라고도 하였다. 우리말로는 새ᄫᅵ·사이·사요·새오라 하였다. 오늘날은 새우가 표준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젓새우는 새우젓을 담그는 새우의 한 종류이며 일반 새우와는 달리 크기가 작고 껍질이 얇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천, 목포 등 서해에 많이 분포하며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해안 등에서도 존재한다. 먹이는 소형플랑크톤과 바다밑바닥에서 사는 유기물을 먹는다고 한다.

 

어민들은 중선 배를 이용하여 새우를 잡았다. 중선은 주로 조기를 잡고 그 다음에 새우를 잡았는데 새우를 잡는 배를 젓중선이라 불렀다. 그물이 중앙에 안쪽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중선이라고 한다.

 

젓중선은 배에 동력이 없어 다른 배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전라도에서는 멍텅구리배, 충청도에서는 실치잡이배, 강화도에서는 곳배라고 불렀다. 특히 강화 곳배는 우리나라 전통 배(船) 역사의 맥을 이어오는 중요한 선박이다.

 

젓새우 어업은 황해도 해주, 강화, 인천, 경기도 등 지역에서 시작하여 충청도, 전라도 지방에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인천·강화 어민들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젓새우어장 중심지였던 문갑도, 만도리어장, 장봉도어장, 선수어장 등에서 젓새우가 많이 나지 않게 되자 영광 낙월도, 신안 임자도 등 어장까지 젓새우잡에 나서 전라도 지역의 젓새우잡이 어업에 영향을 주었다.

 

새우의 일생은 6개월 정도 생존하여 월동세대와 여름 세대로 구분한다. 월동새우는 음력 7월 하순부터 10월경에 알에서 깨어나서 겨울에는 성장을 멈추고 가만히 있다가 4월부터 성장해서 5-6월에 알을 낳고 한 달 정도 생활하다 죽는다.

 

산란 직전 잡은 새우를 5젓, 6젓이라 하며 새우젓 중에서 유명하다. 여름 세대는 5~6월에 이제 알에서 깨어나서 그해 7월부터 10월 사이에 산란하고 죽는다. 새우가 가을에 많이 잡히는 이유다(박광순·김승, 우리나라 젓새우잡이 어업의 발전·현황·과제, 한국도서연구, 제10호, 1999).

 

울도 새우 파시와 등대

 

인천 옹진군 덕적면 울도는 인천연안부두에서 출발해 덕적도에서 배(나래호)를 갈아타고 가야 한다.

 

일제강점기 이곳 울도어장은 동해의 청진어장과 함께 2대 지정어장으로 새우가 유명했다. 1940~1950년대 젓새우 파시(波市)가 열렸다고 한다.

 

울도에서 나고 자란 김상식 어르신은 “예전엔 울도 새우 하면 전국에서 알아줬지. 일제강점기 큰아버지가 36년간 마을 이장을 했거든. 큰아버지는 안강망어선 2척을 갖고 계셨는데, 잡은 새우를 말려 중국에 수출 하셨다고 해. 그땐 집집마다 가마솥이 있어 새우를 쪄서 말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새우를 잡는 안강망 그물을 면사라서 튼튼하게 하려고 가마솥에 삶아 물을 들이기도 했던 기억이 있어”라고 말했다.

 

매일신보(1933년 11월 8일자)를 보면 ‘울도 어장은 지금이 한철로 3백여 척이 조업하여 어획량이 12월 중순경까지 평년의 3배인 15만 환을 기록할 모양인데, 만주국(일본이 만주 지역에 세운 괴뢰 국가)에 신 판로를 개척하여 시세도 평년보다 3-4배 폭등하고 풍년을 맞이하여 중국 청도, 대련, 만주까지 수출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동아일보(1939년 6월 9일자)에는 ‘인천수산시험장에서는 새우의 산지로 유명한 인천근해 덕적도 울도 부근에서 새우의 성어기를 맞이하여 각지의 새우잡이 배로 일대호화판을 이루고 있다. 이에 수산시험장으로서는 새우의 신보고(寶庫)를 탐험코자 수일 전부터 울도 근해를 항해를 하다 귀환했는데 울도 서측 굴업도 근해가 풍어의 보고로 보고 있다고 하며 어획량은 울도 보다 3-4배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보도됐다.

 

새우 어획량 비교(1952~1955)/자료=해양수산부, 재편집=김용구 박사


1952~1955년 사이 새우 어획량을 보면 경기도(인천)가 전국 총어획량의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덕적도에 사는 송은호 씨는 “1930년 중반에 울도 주민 문성재 씨가 새우어장을 발견한 것으로 기억해. 주민들은 울도 어장에서 새우를 잡아서 중국 청도, 대련 등지에 수출을 했지. 중국 사람들이 풍토병 때문에 새우를 꼭 먹어야 한다고 해서 많이 수출했거든. 마른 새우로 만들기 위해 울도, 백아도, 장부도, 지도 등에 건하장(乾蝦場:새우를 말리는 곳)이 있었는데 해방 이후 폐장되었지. 이 새우 덕분에 덕적도 경제가 매우 좋아서 외국으로 유학한 학생이 육지보다 많았지”라고 전했다.

 

울도 등대는 1960년대 설치된 무인등대다.

 

울도 등대모습/사진=김용구 박사


등대를 만들 때 주민들이 지게에 돌과 시멘트를 지고 정상까지 날랐다고 한다. 울도 등대 근처 의자에 앉아 감상하는 덕적군도의 경치는 환상적이다.

 

울도 서남방 1.8km, 수심 30m 지점에 청일전쟁 때 침몰된 청나라 고승호가 가라앉자 있다. 

 

* 이 기사는 경기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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